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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는 힘, 필사395

12월 20일 비판에 대한 두려움 비판에 대한 두려움은 솔선수범의 의지를 파괴하고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을 가로 막는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남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혹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이 비판인지 조언인지 잘 모를 때도 있다. 비판이든 조언이든 다른 사람의 나의 행동과 의견에 대해 뭐라 하면 화가 먼저 난다.  이 모든 것은 비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이 비판이 긍정적일 수도 있으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성장기의 자녀에게 부모가 던지는 너무나도 냉철한 비판은 자녀의 마음을 병들게 하기도 한다. 2024. 12. 20.
12월 19일 가난에 대한 두려움의 증상 무관심, 우유부단함, 의혹, 근심, 지나친 신중함, 미루는 버릇이 여섯 가지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의 증상이다. 가난이 두렵기에 멀리해야 할 일인 것 같지만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이 증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왜 그럴까에 대한 과학적인 이유를 밝혀낼 마음은 없다. 가난이 두려워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이런 얘기를 하면 상사가 동료가 좋아하지 않게 되어 내가 직장에서 잘리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소심해진다. 그리고 가늘게 길게라는 신조로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다른 의미가 아니라 가난에 대한 두려움의 증상인 것이다. 실은 쉽지 않다. 한번 사는 인생,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직급에 올라가도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을 펼친다는 것이 쉽진 않다.. 2024. 12. 19.
12울 18일 인간은 탐욕적인 존재다 성악설을 믿는 사람이다. 동물들은 물리적 측면에서 서로를 먹잇감으로 삼는다. 인간은 동족을 물리적으로 잡아먹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은 동료를 경제적으로 잡아먹을 때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인간은 그만큼 탐욕적이다.  동물이 서로를 먹잇감으로 삼는 것은 살기 위해서이다.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경제적으로 잡아먹고, 거기서 더 큰 만족을 느끼는 것은 살기 위해서인 것도 있고 탐욕이 가득해서이기도 하다.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탐욕 자체를 가지고 악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다른 앵글에서 악의 한 축으로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만들고, 거기에 당한 사람은 고통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자기 가족은 부끄러움을.. 2024. 12. 18.
12월 17일 가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라 두려움에서 벗어나라라는 이 표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라. 즉, 가난과 친구 되지 마라. 가난에서 벗어나 어서 빨리 부를 만들어내라. 그리고 또 하나는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은 마음속의 공포일뿐 그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마라. 일어나지 않은 두려움이다. 아마도 후자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그저 마음의 상태이다. 하지만 그 마음의 상태에 사로잡혀있으면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 이성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상상력을 파괴한다. 자기 의존감을 말살하고 열정의 기반을 약화시키며 솔선수범의 의욕을 꺾어 버린다. 미루는 버릇을 권장하고 열정을 몰아내고 자기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각자의 매력을 빼앗고 정확한 사고의 가능성을 파괴하고 노력을 분산시키고 인내심을 임.. 2024. 12. 17.
12월 16일 자신이 만족할만한 부의 형태와 크기를 결정하라 내 마음에 달렸다고? 그래 부를 얻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 그러니 우선 자신이 만족할 만한 부의 형태와 크기를 결정하라. 어느 정도 양을 어떠한 자산으로 채울 것인가? 만들어갈 것인가? 그것을 정해라. 그리고 그것을 얻는 것은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되고 안되고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뭐 세상 어떤 일이 안 그렇겠는가? 결국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선택하는 것도 어떠한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취하는 것도,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의 것을 버리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선택의 순간 혹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역시 최종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어째 그렇다 하니 허무하다. 2024. 12. 16.
12월 15일 가난과 부 사이에서 타협은 없다 가난과 부사이에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 가난에 이르는 길과 부에 이르는 길은 각각 반대편으로 향하는 두 개의 길이다.  가난과 부사이에서 선택의 길을 준다면 과연 가난을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 다른 조건부 제한이 없는 한 오직 가난과 부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 하면 열이면 열, 부를 선택할 것이다. 가난과 부의 선택의 기로는 도전의 기회이다. 그 도전의 기회에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성공철학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길일 것이다. 지금 가난과 부의 선택의 기로에 있다면 이제 도전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부를 선택했다면 성공 철학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실천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가난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그렇다면 그 가난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정도 해야 한다. 가난을.. 202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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